Personal Opinion

260705 미사 후 생각 메모

Fig.1 7월 5일 매일미사

인문사회알못이 아무렇게나 적는 오늘의 생각

오늘의 미사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기념하는 미사였다. 사진 출처는 매일미사 앱

두괄식 두줄요약:

  1. 어떻게 보면 당시 선교활동을 넘어 선교 루트를 개척하려고 했던 신부님의 행동은 조선 당국에 있어 통치이념과 안보에 큰 위협이 되는 행위로 해석되지 않았을까.

  2. 현대 한국에 기독교(개신교+천주교)가 크게 자리잡은 것은 광복 이후 미국의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위로부터의 개혁과 한국의 중앙집권적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의 대부분의 1세계 국가에서는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국가가 많고, 특히 한국의 경우 무교 비율이 높은 편이다보니 종교를 대충 ‘전지전능한 존재를 믿는 사람’ 내지는 ‘기복을 위한 신앙’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얼마 전까지의 본인이 그러해서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교를 통치이념과 윤리철학으로 생각을 해 보면 김대건 신부의 행동은 당시 조선에 있어 통치이념과 안보에 치명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만민평등의 사상은 군군신신부부자자로 대표되는 유교적 질서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임란 이후 왜관의 재개 이유가 지리 관련 정보를 극도로 제한하려는 의도였다는 점에서도, 김대건 신부의 서해를 통한 선교 루트 확보 시도는 조선 정부에게 있어 안보 위협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일본에서도 후미에로 대표되는 기독교 탄압의 역사를 생각하면 동북아 국가들이 기독교를 대하는 태도는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김대건 신부의 선교 노력을 폄훼하려는 생각이 아닌, 김대건 신부를 처형까지 결정하게 된 조선 정부의 입장이 무엇이었을까, 정도의 생각임을 밝힌다.

두 번째로는, 그런 조선 정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현대 한국의 최대 종파는 기독교(개신교+천주교)가 된 점을 생각하면, 광복 이후 미국의 영향에 의한 선교를 생각하면 위로부터의 개혁의 영향력, 그리고 한국의 중앙집권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는 점이다.

조선보다 훨씬 일찍부터 유럽과 교류했던 일본의 경우 정부에서의 탄압으로 현재까지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지 않고, 신자의 비율도 높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개신교의 교세 확대의 원인 중 하나로 광복 이후 미국의 지원 과정에서의 선교와 자유진영 최전선 국가로서 친미·반공·기독교 정체성의 결합, 그리고 초기 한국 엘리트층의 영향이 꼽히는 점이다. [1]

그 외에도 근대화 과정에서 복지·교육·지역공동체의 빈틈을 메우며 교세가 성장했다는 분석[2]에서 한국의 중앙집권적인 전통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일본과 비교했을 때 전후 본토 피해가 적은 일본과 6-70년대 급격하게 산업화를 이루며 그러한 사회적 변화를 보인 한국이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동북아의 전통이자 건국 초기 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력, 그리고 일본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남긴 냉전과 미국이 남긴 유산에 다시한번 인상이 남는달까.

[1] V. Tikhonov, “South Korea’s Christian Military Chaplaincy in the Korean War - religion as ideology?,” Asia-Pacific Journal, vol. 11, no. 18, p. e1, 2013. doi:10.1017/S1557466013033883

[2] C. Lee and M. Suh, ‘State Building and Religion: Explaining the Diverged Path of Religious Change in Taiwan and South Korea, 1950–19801’,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 123, no. 2, pp. 465–5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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