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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Fig.1 철학의 위안, 현대지성

Would God be willing to prevent evil but unable? Therefore he is not omnipotent.
Would he be capable, but without desire? So he is malevolent.
Would he be both capable and willing? So why is there evil?

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악하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악은 왜 존재하는가?

- Epicurean paradox, Wikipedia

중2병이 좋아할 만한 논증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스토아 학파와 기독교의 최고선 개념을 공부하면서 궁금해진 논증이다. 스콜라 철학은 신의 존재와 질서 등을 이성적으로 논증하려는 학문이었으니, 저 논증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봤겠지, 싶어서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앞의 “악의 문제”는, 인간의 자유의지 논쟁과도 연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처럼 신이 전지하고 전능하면서 동시에 선한 존재여서 모든 것을 미리 선한 방향으로 안배해 놓았다면, 스토아 학파적 세계관처럼 세계가 원자의 무작위적인 현상이 아닌 어떤 이성적인 존재의 규칙과 섭리에 의한 흐름이라면, 그런 세계관과 인간의 악행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닌가 싶어서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 이성은 신의 이성에 못 미치기 때문에 그 섭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때문에 악이 존재하는 듯 보여도 궁극적으로 섭리는 권선징악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근거가 다소 뭉뚱그려진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아닌 믿음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하던 답은 얻지 못했지만, 저자가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추대받은 이유를, 즉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관점에서 궁극적인 최고선이 어떻게 기독교의 유일신과 연관되는지 알 수 있던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묶자면 다음과 같이 묶을 수 있었다.

  1. 참된 행복, 즉 최고선이란 무엇인가
  2. 운명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3.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전능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Fig.2 Christian Worldview

책의 도입부에서는, 저자는 스토아 학파도 에피쿠로스 학파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나온 철학을 변질시켰다는 견해를 보이지만, 앞서 공부했던 스토아 학파와 유사한 견해를 보인다.

  • 우연에 의한 무작위의 세계보다는, 어떤 이성에 의한 규칙으로 세계가 돌아간다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 운명이 가져오는 행운과 불운에 대해서는 무관심함을 보여야 하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참된 행복

참된 행복은 완전한 선, 즉 최고선이자 만물의 근원인 신 그 자체이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소유, 권력, 명예 등은 행복의 구성 요소가 아닌, 행복의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특히, 운명이 가져온 행복, 즉, 소유, 권력, 그리고 명예는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운명이 가져다준 행복은 사라질 수 있는 행복이기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Fig.3 Happiness Is a Warm Gun

다만 몇 가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상적인 추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유는 결핍을 불러올 뿐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최소한 의식주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정도로는 소유해야만 남에 대해서도 베풀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만물은 단일성unum을 이루므로 만물은 선bonum을 추구한다’는 주장에서는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어 보인다. 선이 단일하다는 것은 합당해 보이고, 단일성은 모든 것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 부족함이 없는 존재이기에 선이라는 것도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동식물이 그 구성요소를 이루는 것을 단일성에 비유하여 모든 동식물의 본성이 선을 추구한다는 결론은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어 보인다. 어떤 개념이 그 구성 요소를 완전히 이루어 그 개념을 갖추는 것이나, 어떤 생물이 그 구성요소를 갖추어 생존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일성과, 앞서 확인한, 모든 것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 부족함이 없는 존재라는 의미의 단일성은,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단일성과 선의 추구를 동일시하는 것 보다는, 단순히, 인간은 흠 없는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선을 추구한다는 논리가 보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악한 이가 아닌 선한 이가 ‘참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인다. 악행은 절대선, 즉 참된 행복과 연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악한 이가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참된 힘은 선한 이에게 있다는 것이다.

운명에 대해

신의 섭리는 선하지만 운명은 시간에 따라 안배되고 전개된다. 때문에 선한 이에게도 가혹한 운명이 찾아올 수 있고 악한 자에게도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다. 섭리를 모르는 자는 이를 모순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섭리는 궁극적으로는 선을 향해 흘러간다.

Fig.4 O Fortuna

그리고 운명은 선하나, 운명을 유익하게 활용하느냐 해악이 되느냐는 모두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 행운에 교만해지지 않고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중용을 지켜 미덕을 이루라는 것이다.

자유의지에 대해

모든 것이 섭리에 의해, 과거의 사건의 연속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저자의 설명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갖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이성을 버리고 욕망에 이끌리면 자유의지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능한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신이 이미 알고 있고, 신이 안배해 놓은 것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정말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는가?

Fig.5 Expectation

여기서 저자는 두 가지 주장을 한다. 하나는 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둘은 시간축에 대한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이다.

우리가 자유의지에 따라 미래에 무엇을 행할지 이리저리 바꾸어도, 그 자유의지의 결과조차도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축에 대해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하나, 신은 변하지 않는 현재에서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다.

결론

종종 느끼던 원문과 주석서 중 무엇을 읽을까 하던 고민에서, 다시한번 원문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지는 텍스트였다.

초-중반부의, 저자의 그리스 철학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부분과, 유일신-최고선에 대한 논리적 입증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고, 왜 저자가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라는 명성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Fig.6 Ani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하지만 동시에, 악의 문제와 자유의지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논리적 비약을 느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신학 책이나, 이 문제에 대해 직접 다루는 책을 찾아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참고문헌

Boethius, 박문재, Transl., 철학의 위안, 현대지성,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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