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 되는 법
Fig.1 파시스트 되는 법, 사월의책
요약
요약하자면, “파시스트 되는 법”은 파시즘의 핵심적 특징들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역사적으로 파시스트들이 활용했던 정치적 전략들을 소개하는 저작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되는 정치적 수단들은 더 이상 파시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정치 환경에서는 진보와 보수, 여야를 불문하고 유사한 방식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 정당들이 보수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 책이 다루는 전략적 행태들은 현대 한국 정치에서도 특정 이념 진영을 넘어서 일반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J.S. 밀의 “자유론”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상이한 의견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다. 이는 공론장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이러한 이상론과는 상반되는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의 표를 확보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정치적 대립 구도를 강화하고, 반대 진영을 비하함으로써 지지층의 내부 결속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치인들은 공약이나 자질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합리적 유권자보다는, 특정 정당에 일관된 지지를 보내는 고정 지지층(이른바 ‘콘크리트층’)을 확보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정치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인은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반성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일방적 거부가 아닌 이해와 비판적 수용의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다만,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현재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이러한 태도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실효성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내용
불분명한 정의와 분명한 수단
이런 이유로 해서 독자는 이 책에서 '파시스트적 이념'을 정의하는 부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파시스트 방법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이념적 내용은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파시즘은 그 정의는 불분명하고 그 행동 양식에 따라 구분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파시스트적 수단의 특징들을 살피다 보면, 독재를 정당화한다는 점과 보수주의적인 사람들이 주로 지지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현대 한국에서는 좌우 모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들이 많다.
때문에 본인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다뤄지는 정치적 수단에 대해, 파시스트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수단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성적인 토론과 합의 과정을 방해하고, 편을 갈라 진영논리에만 매몰되다가 우리 편이기만 하면 극단적인 의견도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무너트리는 정치적 수단들이라는 생각이다.
독재
민주주의의 특징은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은 그 시간이 오래 들 뿐더러, 그 점을 정쟁에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파시즘은 이 점에서 권력의 집중을 요구한다. 독재는 결정 주체가 집중되어 빠르고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독재의 폐혜를 역사에서, 북한, 일본 제국,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그리고 근현대 한국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의견 수렴 과정의 부재는 정책 실패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하지만 모든 독재정이 파시즘인 것은 아니다. 파시즘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얻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말이다. 쿠데타 등의 수단으로 쥔 권력보다, 대중의 힘으로 얻은 권력은 그 정당성에서도 반대파 의견을 묵살하는데에도 유효하다.
반지성주의
... '다수의 압제'는 지금 사회가 경계해야 할 악으로 널리 꼽히고 있다. ... 사회는 보통 정치적 탄압과 같은 극단적 처벌을 통해 지탱되지는 않지만, 도피 수단을 거의 남기지 않고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훨씬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 영혼 그 자체를 노예화하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지성주의를 이용한다. 이는 기술 발전으로 개개인의 의견 표출이 쉬워지면서 더욱 주목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위상을 깎아내리면서 그 목소리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유론”에서 표현된 ‘다수의 압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교묘하게 위장된 다수 의견은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반대 의견을 묵살할 수 있을 것이다.
평등, 공정 등을 이유로 지식인들의 의견을 깎아내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몇년 전 탈원전 과정에서 정부 부처에서의 전문가의 부재와 시민참여단에 의한 의사 결정 그리고 ‘원피아’ 등의 단어를 통해 전문가를 단순한 이익 집단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쉬워진 소통만큼 범람하고 검열되는 메시지
이 책에서는 소통하는 정치인의 환상도 지적하는데, 정치인과의 소통 그 자체와 정치인의 발언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퍼지는 현상을 지적한다. 정치인과 SNS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 있어 보이지만, 결국 지지자에 대한 홍보일 뿐 의견이 대립하는 사람과의 토론은 없다는 것이 그렇다. 국민청원에서도 정부의 성향에 따라 무시되거나 삭제된 청원이 꽤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다음 정권의 국민제안에서는 정부 기관을 거쳐 일부 제안만이 통과된다는 점이 그렇다.
정치인의 발언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퍼지는 현상 중에서도, 어떤 이슈가 사소한 것이 되어 다른 이슈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 현안이 다른 이슈에 의해 묻히는 경우를 우리는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다. 그 다른 이슈가 의도되든 의도되지 않았든, 어떤 정치적 이슈가 다른 이슈에 의해 작은 것이 되어 잊혀지거나 그 본질을 잃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상대와 적, 그리고 레이블링
상대Opponent와 적enemy는 어떻게 다른가? 상대는 설득해야 하고 합의해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적은 다르다. 적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적은 어떤 형태로든 필요하다. 흔히 이 적은 딱지가 달리고 허수아비 논증으로 자주 세워진다. 수꼴, 좌빨, 한녀, 한남충 등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많은 딱지 붙은 적이 만들어져 있다. EBS 위대한 수업에서 다룬 “비인간화”와도 연관지을 수 있겠다.
이렇게 딱지가 붙은 적들은 그 집단을 대표한다. 한 난민의 범죄는 난민을 범죄 집단으로 만들고, 강성 노조의 폭력 시위는 노조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만든다. 의사의 성범죄는 의사를 의주빈으로 만들고, 보수당 의원이 버스요금을 모르는 것은 보수당 전체를 민생을 모르는 집단으로 만든다. 보수주의자는 일베고, 진보주의자는 빨갱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레이블이 붙은 집단은 우리를 위협한다. 난민은 국민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노조는 기업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한다. 의사는 스스로의 이익에 눈이 멀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민생을 모르는 대표자는 권력자만을 위한 정책을 세운다. 보수주의자는 독재를 옹호하고 진보주의자는 안보를 위협한다.
우리는 어떤 집단의 부당한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 모든 집단은 특징과 경향성을 가지지만, 부당하게 붙는 꼬리표는 부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고, 흔히들 생각하는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는 저소득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정책 대상의 호오에 따라 지원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에는 단발적인 현금 제공, 중산층과 고소득층에는 투자 관련 법안 개정이나 고용 관련 법안 개정 등이 있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총선을 통해 뽑히는 국회의원의 특성 상 피하기 힘든 특징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권자의 눈치를 봐 가면서 입법을 해야 하니 소수보다 다수의 의견을 중시하고, 출신 지역구에 유리한 법안을 내며, 현금 지원 등의 자극적인 법안을 내는 것이 당연히 유리할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소수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만든 제도가 비례대표제이나, 최근 위성정당으로 인한 악용으로 원 의도를 살리기 어려워 보인다.
법사위를 통해 형량이나 과도하게 포퓰리즘적인 법안이 걸러지기는 하겠으나, 법사위 또한 국회의원이기에 그 한계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표적으로 민식이법의 경우에도 그 형량 면에서 법사위에서 조정이 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포퓰리즘 관련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
파시스트와 가부장제
이 책에서는 파시스트의 주요 특징으로, 극우와 가부장제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설명한다. 전통적 가부장제로 남성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여성은 주도적인 역할 대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리고 동성애자나 외국인 등의 소수자에 대해서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마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 점에 대해서, 즉 파시스트의 가부장적 특징에 대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주목해서 읽으면 마치 파시스트는 가부장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로만 보이고, 진보주의자는 파시즘 논란에 대해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파시즘으로 주목된 집단은 가부장과는 거리가 멀고, 앞서 짚은 다양한 비민주적 수단에 대해 한국에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본인은 이 점에서 이 책의 파시즘에 대한 주장을 한국의 현실정치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인 파시스트는 가부장적인 게 맞다. 독일의 예를 들면, 1차 대전 당시 왕정이었으나 전간기에 들어서면서 민주정이 들어서고, 대공황으로 어려운 시기에 공산주의가 급속히 퍼지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들인 유대인이나 배후의 중상의 원인으로 몰린 공산주의자들에게 탓을 돌리면서, 고전적인 ‘그때는 좋았지’를 회상하는 유권자들을 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가부장적인 이념을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대 대선에서의 ‘이대남’ 현상을 어떤 언론에서는 극우화, 또는 파시즘으로 다루었다. 유력 정치인도 ‘극우 포퓰리즘’을 언급한 바 있다.2
하지만 막상 20대 남성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선호는 낮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불평등과 남성의 삶의 질에 관한 연구(2018)’에 따르면, ‘가족의 생계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에 20대 남성 41.3%가 비동의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관에게 복종해야 한다’에는 56.8%가, ‘힘든 일 있어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에는 62.6%가 비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3
그리고 그 이대남들은 파시즘으로 발전하기는커녕 24년에 들어서는 무당층으로 돌아선 비율이 높다. 만 18~29세 남성의 무당층 비율은 27%였으나 이번 총선 두 달 전인 지난 2월에는 무당층이 평균 43%으로 늘었다.4
본인의 주장은, 한국 20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및 보수당 투표에 대해 몇몇 기성 진보당 및 진보주의자들은 파시즘으로 매도하였으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가부장제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시대적·제도적 사각지대에 서 있기 때문에 생긴 반감이라는 것이 20대 남성이라는 것이다. 아직 남은 가부장제의 잔재로 책임감은 많으나, 여성에 주안점이 치우친 성평등 제도로 인해 역차별을 느끼는 경험이 더 많은 것이 현대 한국의 20대 남성의 위치라고 생각한다.5
때문에 필자는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 파시스트의 가부장적 특징에 대해서는 현대 한국에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
앞서 말했다시피, 이 책에서 다루는 파시스트적인 수단들은 현대에 와서는 좌우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정치적 수단들이다. 역으로 말하면, 현실정치에서는 이런 수단을 쓰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열심히 이상적인 민주주의적 자세를 고민해왔지만, 이미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현실정치에서 이런 이상적인 자세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 지는 모르겠다.
참고문헌
M. Michela, Istruzioni per diventare fascisti, 한재호, Transl., Goyang, Korea: 사월의책, 2021.
2 이재명 “이준석, 잘됐으면 좋겠다…’극우 포퓰리즘’ 관리 필요”
3 가부장적 남성성 유통기한 지났는데… ‘멋진 차 모는 능력남’ 끈질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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