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gion

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 삶의 규범들

Fig.1 Book cover

제3편 정화와 조명의 기간

이 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공부하며 새로운 삶의 준비를 하는 단계라고 한다. 삶의 규범들, 그리고 보다 실천적인 삶의 태도의 예시들을 든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자연법, 성경에서의 규범들, 정당한 실정법, 교회법을 간략하게 확인하고, 구체적인 삶의 방향들, 경제 생활, 사회 생활의 예시를 든다.

제21과 새로운 삶의 규범들

회개의 삶, 즉 향주덕(向主德, virtus theologica)과, 자연법(lex naturalis), 구약의 법과 십계명, 신약의 법이자 그리스도의 법, 그리고 실정법과 교회법에 대해 다룬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고, 십계명을 지키며, 공동선에 이바지하며, 실정법과 교회법을 지키는 삶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다소 기반 지식이 많이 필요하고 생각이 많이 필요한 소단원이었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을 마저 읽고 다뤄야겠다.

향주덕은 한자와 라틴어 그대로 보면 신을 향한 덕이다. 믿음, 희망, 그리고 사랑을 포함한다고 한다. 앞서 성부를 최고선이라고 가정한 것2에서 이어서 생각하면, 에픽테토스가 말한 “보편 이성과 초월적 규범의 수준에 자기를 위치시키는 정신 수련”3과도 연관되는 느낌이 든다. 자세한 건 “명상록 수업”을 완독하고 정리해보도록 하자.

자연법은 정치철학 관련 서적4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고대 그리스로부터 정리된 사상으로, 비당파적이고 시대에 불변한 윤리이며, 실정법과 상호 보완적인 특징을 가진다. 상세한 내용은 나중에 보다 전문적인 책을 읽고 정리하도록 하자.

제22과 하느님 사랑

이 단원에서는 십계명의 첫 세 계명,

1.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에 대해 풀어 쓰고, 상세히 다루는 단원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계명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느님을 함부로 언급하는 것이 신성함의 격을 떨어트리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든다.

우리의 생각을 정당화하거나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데에 하느님의 이름을 끌어들인다면 이는 하느님을 소유하거나 자신의 틀에 가두는 큰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는 플라톤이 말한 “다이몬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을 흠숭하고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것이 죄와 멀어지는 것이라면, 스토아주의자처럼 “우리 안의 이성을 신성한 보편 이성의 일부로 유지하는 것”3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면, 성체성사는 신성한 보편 이성에 나 자신을 동일시하여 덕을 체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제23과 가족 사랑

부모에 대한 효도, 자녀에 대한 사랑, 부부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다루는 소챕터이다.

다만 한 가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그리스도교를 자녀에게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교리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를 무비판적으로 믿게 된다면 괴력난신을 믿게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자식을 기를 때에 있어 조심스러울 수 있을까.

제24과 생명 사랑

폭력, 살인, 정당방위, 사형 제도, 낙태, 안락사, 자살, 생명과학, 그리고 조금 넓게 보아 악한 표양과 거짓 증언까지 다루는 단원이다.

자살에 대해선 어렵다. 남을 자살하게 만드는 행위는 남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니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카톨릭에선 남을 자살하게 만드는 행위는 악한 표양으로 해석되니 종교적으로도 합당해 보인다. 법적으로도 처벌받는다.5 하지만 자살 자체에 대해서는 고민이 되는 면이 있다.

자살은 스스로의 삶을 끊는 행위이다. 생물이 가진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를 스스로 저지를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면, 삶을 연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심신미약 상태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의 판단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니 잘못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판단력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연명하기를 포기하는 것 또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삶이 고통뿐이라면 그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삶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생각6을 따르는 본인으로서는 그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기독교 전체에서 순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 또한 생명 존중의 교리와 모순되는 면이 있다.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라면, 신념을 굽히지 않고 죽는 것 보다는, 겉으로는 신념을 굽힌 척 하되 살아남는 것이 보다 더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세한 건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눠 본 후에 마저 정리하도록 하자.

제25과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

공동선을 지향하는 경제 생활에 대해 다룬다. 그 중에서도 강조하는 것은, 자본이 행동이나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만 하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사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으니 나중에 보다 알게 되었을 때 깊이 생각해보자.

제26과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이 단원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 다루는 인권과 평등 사상, 사회 정의과 공동선, 보조성과 연대성의 원리와 정치 공동체의 공동선 추구, 평화 추구 및 자연 보호, 그리고 실천적인 삶에 대해 다룬다.

대부분의 주제는 “신이 창조한 인간에 대한 존중”을 중심으로 다뤄진다.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므로 인권과 평등 사상은 신성한 것”이라는 논리와, 이로부터 이어져서 사회 정의와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권리를 보호한다거나, 인간 생명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므로 자연 보호를 해야 한다거나, 등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확인한 인간 중심의 생각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던 부분이었다.2

주된 내용은 공동선의 실현을 위한 협력에 대한 강조이다.

제27과 영원한 삶

죽음은 심판의 날을 기다리는 잠일 뿐이고, 심판의 날에 죽은 자는 모두 부활하고, 선한 자는 천국으로 악한 자는 지옥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천국과 지옥 부분은 권선징악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깊게 생각할 여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참고문헌

1 Lee, Y., 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 Seoul, S.Korea: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3.

2: 한국 천주교 예비 신자 교리서 성부, 성자, 성령과 삼위일체: 제7과 창조주 하느님

3: 명상록 및 명상록 수업

4: 정치철학 공부의 기초: 가장 좋은 정체를 이해하는 법

5: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25조 제3항.

6: 공리주의 제2장 공리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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