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및 명상록 수업
Fig.1 명상록, 숲, 명상록 수업, 복복서가
스토아 학파란 뭘까. 이과-공대로 진학한 필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기껏해봐야 에피쿠로스 학파와 대립했다거나, 금욕적인 삶으로 유명했다던가, 정도밖에 모른다. 위키를 찾아봐도 워낙 길고 방대한 내용을 자랑하느라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스토아 학파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살던 중에 “명상록”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논어와 비슷하게 단편으로 교훈적인 내용이 적혀 있고, 책의 두께가 두껍지 않아 읽게 되었다. 로마 황제가 쓴 책이 아직까지도 교훈을 주는 점이 흥미로웠지만, 읽던 중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몇몇 내용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Fig.2 Don’t reinvent the wheel
이런 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명상록 수업”이라는 책도 읽었다. 프로그래밍에는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마라Don’t reinvent the wheel”이라는 격언이 있다. 우리가 중력을 이해하기 위해 프린키피아부터 이어지는 논문들을 전부 읽을 필요가 없듯이, 이 고전을 이해하기 위해서 명상록을 설명하는 책을 꺼냈다.
필자가 명상록에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점들에 대해서, 서두부터 명상록의 특징을 짚어 주어서 이해를 시켜 주었다. 명상록은 필사로 이어져온 고전이고, 독자를 고려한 게 아닌 황제 스스로를 위한 메모에 가까운 책이라는 분석을 한다. 때문에 생략되거나 순서가 바뀌었을 수 있는 텍스트가 많고, 현대인의 시각보다 당대의 시각의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Fig.3 논문의 구조와 명상록 수업의 구조
당대의 시각으로부터 명상록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레퍼런스로부터 분석을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를 스토아주의자로 만든 스승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당대의 저명한 스토아주의자였던 에픽테토스와 그의 스토아주의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정리하는 스토아주의에 대해 분석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위 그림 3처럼, 논문이나 학회 발표의 구조와 명상록 수업의 구조가 유사해, 독자가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구조를 취했다는 것이다. 다루려는 주제에 대해 넓게 다루다가, 점점 상세한 내용으로 좁혀 나가다가, 결론에 이르러 다시 이해하기 쉽게 다루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명상록 수업은 독자를 배려한 잘 쓰인 책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다양한 사건에 직면하고, 감정을 느끼고,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다시말해 살면서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옳은 것일까? 스토아주의자는 이에 대해 도덕적 선과 악에 대한 판단과, 운명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는 삶을 강조한다.
저자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다루는 스토아주의에 대해 크게 세 범주로 나눈다. 먼저 삶의 규율에 대해서는 동의의 규율, 욕망의 규율, 그리고 행동의 규율이다. 그에 상응하는 인간의 활동은 판단, 욕망, 그리고 행동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이 세 범주는 다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세 분과로, 논리학, 윤리학, 자연학에 대응한다.
우리는 이 세 범주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이 우주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며, 세 규율을 훈련하며 굳건한 내면의 성채를, 내면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Fig.4 Circumscribing the self
동의의 규율은 외부 사건에 대해 비판적으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서 판단을 하고, 도덕적 선악을 가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지만 그 사건들에 매번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사건들에만 자유롭기 때문에,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과거나 미래의 사건들로부터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선과 악을 구분하고,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해야 한다.
Fig.5 Modest mouse - Dashboard
이름으로부터 헷갈릴 수는 있으나, 욕망의 규율은 외부 원인으로부터 일어난 사건을 사랑하며 받아들이는, 운명애amor fati이다. 운명으로부터 일어난 사건을 왜 사랑해야 할까?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러한 사건들을 전체의 의지, 신적 의지, 보편 이성에 의해 일어난 사건들이라고 생각하고, 때문에 이런 사건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감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것과는 어떻게 다를까?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새로운 극복과 개선의 기회로 사랑하며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체념과는 다르다. 마치 보드게임에서 주사위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전략을 짜듯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집중하는 것이다.
Fig.6 Social animal
행동의 규율은 공동체에 이롭게 행동하고, 행동의 가치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규율이다. 동물이 동물적 본성에 맞게 행동하듯이,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서 공공선에 도움되는 행동을, 인간 본성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 판단마다 해당 사안의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을 맞게 배분한다. 현재의 행동에 집중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선한 의지와 의도를 집중하여 행동 그 자체로 완성과 충족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동시에 장차 생길 수 있는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 현재에 집중하는 수련과 불행에 대비하는 수련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운명을 기쁘게 받아들이되,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예측하고 어떻게 맞설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미래의 불행은 단순히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나쁜 일이 스토아주의적으로는 나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공동체에 이롭게 행동할 때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영혼은 이성적 본성과 선을 향한 무의식적 욕망이 새겨져 있다. 악인은 악을 택해서가 아닌, 선을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런 자들을 대할 때는 인내, 다정함, 섬세함,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며,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스토아주의자의 근본적 태도는, 매 순간 전체와 연결된 실재를 사랑하며 자신을 동일시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배움을 쌓는 목적은 유용한 존재가 되어 타인을 돕고 전체와 개인 모두에게 마음을 쓰는 것이다.
Fig.7 The inner citadel
명상록 수업의 원 제목은 내면의 성채로, 스토아주의자에게는 외부로부터의 시련으로부터 내면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철학자라는 뜻이다. 이번 독서로 보다 스스로 바로설 수 있고, 외부의 사건으로부터 더욱 굳건한 나 자신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명상록 원문으로부터 파편화된 교훈을 얻는것보다, 스토아 학파의 주요 요소들을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현실에서 연습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명상록 수업은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M. Aurelius, 천병희, Transl., 명상록, 숲, 2016.
P. Hadot, 이세진, Transl., 명상록 수업, 복복서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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