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Fig.1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자작나무
이 책을 몇 개의 형용사로 줄이자면, “개론서를 일반인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요약하고 다음 행선지를 알려주는 형태로 정리한 책”이다.
순서대로 다루면, 첫 번째로 이 책은 개론서다. 대학교육을 예로 들자면 1-2학년 때 듣는 일반물리, 일반화학이나, 재료공학개론 등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철학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어느 분파가 있는지 겉핥기로 다룬다. 책의 목차만 읽어도 어떤 내용을 다룰 지 감을 잡을 수 있고, 각 챕터의 소제목까지 읽으면 각 주제에 대한 반론까지 한 문장으로 요약해준다.
두 번째로는, 서술을 극한으로 줄이고 핵심만 담아냈다. 각 철학적 담론의 역사나 유명인들은 덜어내고 주장의 핵심만을 다뤄서, 길어봐야 네 페이지 안에 주장을 다루고, 마찬가지로 반론도 길어봐야 한두 페이지로 다룬다. 짧고 핵심적인 문장뿐만 아니라 적절한 예시도 담아서 이해하기 쉽게 각 담론과 반론을 소개한다.
세 번째로는, 각 담론의 마지막에 다음에 공부할 책을 추천한다. 아무래도 번역서다보니 대부분의 책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 이 책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공부할 방향성을 줬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총 10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곱 개의 철학적 분과로, 신학, 도덕철학, 정치철학, 인식론, 과학철학, 심리철학, 미학을 소개한다. 각각 신의 의미와 존재 여부에 대해,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자유와 평등 그리고 법의 의미에 대해, 실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과학적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마음이라는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다. 이 중 궁금해 왔던 내용이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오던 관념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고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되거나, 내가 생각하던 관념이 어떤 분야에 속했고 어떤 반론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될 수 있겠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단어의 번역 중 몇몇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언명령 대신 정언명법으로 쓰여 있다거나, 반실재론 대신 비실재론으로 쓰여 있다거나 등이 있겠다. 다만 전공자가 아니라 이 외에도 더 있을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인 생각
인생관에 대해
“명상록 수업”을 읽고 신에 대해 개인적으로 가지던 생각이, 이 책의 ‘신은 인간의 이상에 불과하다’는 소챕터에서 다뤄졌다. ‘신에 관한 반실재론’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모든 도덕적 정신적 가치들의 이상적 통일체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지적하듯, 전통적 신에 관해 그리고 종교의 교리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전지하고 전능하고 지선한 신의 존재에 대해, 천국과 지옥 등의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본인은 성당에 다니고는 있지만, 미사에 참여하는 의미를,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도덕적인 행동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의 의미만을 갖고 있고, 가톨릭의 교리에 관해서는 큰 관심이 없거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사도신경의 첫 문장인, 전능한 창조주로서의 신에 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다. 때문에 이 반론이 ‘신에 관한 반실재론’이 전통적 신의 존재에 대해서 설명을 못한다는 효과적인 주장일지는 몰라도, 본인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에는 큰 타격이 없다.
하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대해 스토아 학파적인 방향으로만 생각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학파적 생각을 요약하면, 운명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하며 현재에 집중하고 우리 내면의 신성한 보편 이성에 따르는 것인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굉장히 좋은 말이지만, 본인은 아직 다른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정말 맞는 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아 학파적 인생관은 그 결론만을 보면 매우 아름답지만, 그 근거가 되는 ‘어떤 이성적이고 지선한 존재가 안배해둔 운명’이라는 관점을 가지기에는, ‘원자의 무작위한 운동에 의해 운행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세계’에 대한 관점도 틀리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에피쿠로스 학파라던가, 신은 죽었다던 현대 철학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철학을 종류별로 가볍게 겉핥기로 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도 대립했던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서도, 그리고 현대 철학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다.
정치철학에 대해
본인의 정치철학 공부 목표는 현실 정치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 그 법안의 목적과 예상되는 결과를 판단할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 또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떤 사상이 있는지, 그 사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상을 선호하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본 책에서 언급된 민주주의의 단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든다. 한 때 유행어였던 “국평오”라는 단어로도 생각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단점도, 간접민주주의의 단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파시스트 되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초반부에서도 민주주의의 특징과 약점에 대해 다루는 면이 있다. 민주주의의 특징에 대해, 그리고 파시즘의 특징에 대해 입문서로 읽어볼 만 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은 극단적인 사상이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선택된 결과를 역사에서 봤으니 말이다.
평등에 대해서도 최근 정치권에서 다뤄지는 주요 이슈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책에서 다룬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의 문제가 있다. 미국의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과 그에 따른 역차별이 현실적인 예시일 것이다. 무슨 책이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공부를 우선으로 하고, 나중에 추천을 받아보자.
아직 사 놓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이 너무 많은데, 최근 원문보다 해설서를 읽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알고 후회되는 느낌이다. 마키아밸리의 로마사 논고와 군주론,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사 놓았는데, 이 사상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어떤 논의를 거쳐 발전했는지, 현대에서는 어떻게 논의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걸 원문만 봐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버리기에는 영 아까우니, 얼마 전 본 “명상록”과 “명상록 수업”처럼, 해설서와 함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W. Nigel, Philosophy: The Basics, 최희봉, Transl., Paju, Korea: 자작나무,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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