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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해의 어부 감상: 단편과 프로파간다

Fig.1 내해의 어부, 시공사

“바람의 열두 방향”에서 이어지는 “내해의 어부”는 어슐러 K. 르 귄의 후기 단편선이다. “바람의 열두 방향”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은은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내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든 단편선이라면, “내해의 어부”는 강한 메시지를 담으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숙제처럼 읽은 프로파간다 단편선이라는 감상이다.

흥미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단편선이다. 예를 들면 인식론,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인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사실인지에 관해 다루는 단편, 부조리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단편, 또는 마초적인 문화를 비판하고 여성주의적 주제를 담는 단편 등이 있다.

전작과는 달리 몽환적인 분위기보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거나 전작의 동화같은 단편선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 전작에서는 “어둠 상자”나 “샘레이의 목걸이”처럼 줄거리와 묘사가 환상적이고 신화를 연상케 하는 단편들이 있었으나, 이번 단편선은 다소 정치적 메시지에 주력한 작품이 많았다.

예를 들면 여성주의적 주제를 담은 단편인 “고르고니드와 한 최초의 접촉”의 줄거리는, 고압적인 남편과 여성적인 아내가 호주 관광 중 외계인을 조우하는 내용이다. 남편의 묘사는 그림으로 그려 낸 듯한 부정적인 마초맨이다. 작중 아내에게 계속 강압적으로 대하는 남편은 친구에게 과시하기 위해 호주 원주민의 기록을 남기려는데, 마주한 것은 원주민이 아닌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인 줄 모르고 원시인에게 춤을 추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외계인이 가까이 다가오자 총을 꺼내고, 외계인은 그를 제압한다. 아내는 평화적으로 외계인과 첫 조우를 하며 유명 인사가 된다는 내용이다.

“뉴턴의 잠”이라는 단편은 전지구적 위기를 대피할 수 있던 특권층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죄의식에 대해 다루는 단편이다. 그 내용은, 다양한 오염과 질병으로 인해 지구에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이 줄어들자 소수의 건강한 식자층을 궤도 기지로 올려보낸, 우주 대피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우수한 인재를 골라 뽑은 대피소에서도 권력다툼이나 인종차별이 이어지지만, 인류의 생존자이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화자를 중심으로, 점점 대피소의 사람들이 지구의 환상을 보게 되면서 일어나는 혼란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다.

다만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데에 주력하다보니 인물이 평면적이며 줄거리의 전개가 작위적이고, 때문에 메시지의 설득력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내해의 어부”의 단편들은 사회적 이슈를 담은 몇몇 고발영화 또는 재난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판하고자 하는 주제를 단순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은 상세히 묘사해, 강한 메시지를 담아내지만 설득력은 부족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단 감상이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고르고니드와 한 최초의 접촉”에서는 남편의 고압적인 태도와 폭력적인 성향을 주로 묘사해 마초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인물이 다소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서술로 허수아비 때리기가 연상될 정도이며, 막상 결말에서 아내는 작중 주도적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마비된 남편 옆에서 우는 게 전부였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외계인과의 첫 조우로 영웅이 된다는 줄거리는 여성주의적 메시지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앞서 언급한 “뉴턴의 잠”이란 단편은 작중 후반에서 등장하는 사건이 메시지 전달을 위한 편의적인 사건이라는 감상이다. 주인공의 최선의 선택은 알 수 없는 이유와 사건들로 방해받고 끝내 주인공만 볼 수 없는 환상에 의해 딸에게 도움을 받는 결말은, 여전히 작중에서 주도적인 행동도 한 적 없으며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전형적인 십대 청소년 딸이 무슨 자격으로 아버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이끄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는 줄거리이다. 특히 비판할 만한 대상은 주인공보다도 대피소의 사회임에도 주인공이 비극의 피해자가 된 줄거리는 비판의 초점을 사회보다 개인으로 집중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이 너무 길어져 줄거리를 상세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상황을 바꾼 돌”, “가남에 맞춰 춤추기” 또한 비슷한 줄거리다.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는 일방적인 악마화를, 옹호하고자 하는 대상은 이유 없는 띄워주기가 이어진다.

에드거 앨런 포 전집 중 하나인 “글쓰기의 철학”에 의하면 시나 단편같은 짧은 문학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그런 점에선 “바람의 열두 방향”은 훌륭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설득력 있는 비평을 위해선 양측의 논의를 잘 담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선 “바람의 열두 방향”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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