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와인: 삶, 인생, 그리고 죽음에 관해
Fig.1 민들레 와인, 황금가지
두괄식 세줄요약:
- 반자전적 소설로, 삶의 철학을 어린아이의 여름방학 동안의 사건들을 통해 전달하는 작품이다.
-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삶에 대한 관점에서 에피쿠로스, 스토아,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 시간은 유수와 같고 죽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겠지만, 삶의 모든 사건들을 사랑하며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스토익한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는 “화씨 451”, “화성 연대기”로 유명한 SF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다.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에서 나왔고, 뒷표지에서 소개하는 이 책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1928년, 미국 중서부의 소도시 그린타운에 사는 소년 더글러스 스폴딩. 풋사과 나무, 부드럽게 깎인 잔디밭, 새 운동화와 함께 시작한 그해 여름은 소년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경이로운 시작은 거대한 숲 가운데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민들레 와인을 만드는 동안 곳곳에서 마법적인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행복의 그늘 뒤로 슬픔을 쏟아 내는 행복 기계, 9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프리라이 대령의 기억 타임머신, 거대한 협곡 속 정체불명의 외로운 남자 등 13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소년의 투명한 시선으로 펼쳐진다. 그 찬란한 여름 속에서 소년에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은 동시에 사라져 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삶의 순간들은 소년의 노란 메모지첩 안에서 소중한 지혜로 빛나게 된다.
저자와 줄거리 요약을 봐서 SF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내용은 소년에게 닥쳐오는 일상적이면서도 다양한 사건들, 삶에 대한 자각과 행복, 불가피한 이별과 죽음에 대한 자각, 그리고 소년의 입을 통해 저자의 생각을 담은, 반자전적인 소설이다.
연상이 되는 책은 아주 짧은 문단으로 저자의 삶에 대한 관점을 다룬다는 점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그리고 “성경”의 코헬렛이 있다. 하지만 피에르 아도가 “명상록 수업”에서 지적했듯이, “명상록”은 무질서한 텍스트인, 비망록의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점에서 “민들레 와인”같은 흐름은 찾기 어렵다. “성경”의 코헬렛과 비교하기에는, 코헬렛은 다소 삶과 행복의 허망함 그리고 믿음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 철학이 다소 다른 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민들레 와인”을 읽으며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에서의 철학적 사유의 단편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행복에 대해, 죽음에 대해 평상시에는 그런 철학적 사유에서 배운대로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하겠지만, 그것들이 현실로 닥쳤을때 얼마나 가슴아픈지 느낄 수 있던, 재미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앞서 짚은 “명상록”, “성경”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한 소년이 자연 속에서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단편, 그리고 민들레 와인을 빚으며 시간을 박제하는, 마치 사진으로 추억을 기록하는 단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어릴 때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돈이 없을때 가계부를 쓰고, 시간이 없을때 시간표를 짜는 것처럼, 우리는 성장하며 언젠가 찾아올 죽음에 대해 자각하고, 그리고 그 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책은 그런 순간으로 시작한다. 여름방학의 시작, 소년은 삶에 대한 자각과 사건의 기록을 시작한다.
행복 기계 에피소드는 소박하다. 그저 캡슐 안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이국의 경치를 보여주고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는 정도이다. 소박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잠깐의 감각적 행복은 상실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고, 가족애를 추구하는 것으로 잔잔하게 끝나는 에피소드다.
벤틀리 부인 에피소드는 다소 잔혹하지만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스토익한 관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과거는 나를 정의하지만 이미 지나간 사건들일 뿐, 과거에 대한 집착은 상실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증조할머니의 죽음은 의연했고 라비니아는 연쇄살인마에 대해 당당하게 대응하려 했지만, 존과의 이별을 마주하게 된 주인공과 생명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상황에서의 라비니아는 원초적인 슬픔과 공포를 잘 보여준다. 과연 나는 이별의 슬픔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단편들이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민들레 와인은 삶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묘사가 좋았다. 3챕터의 일부분을 발췌하고자 한다.
와인은 병에 가둔 여름이었다. 더글러스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절감했다. 세상을 보고 만지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 중 일부, 와인을 만든 이 특별한 날을 밀봉해 따로 떼어 두었다. 그것은 옳은 일이었고 또 적절한 일이기도 했다. 1월 어느 날, 줄기차게 눈이 와 몇 주고 몇 달이고 해가 뜨지 않을 어느 날 그 와인 병을 열어 볼 것이다. 아마 그때쯤에는 기적 중 일부는 이미 잊혀져서 다시 되살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여름이 와인 병에서 살아날 것이다. 그는 이 병들을 한데 모아 이름을 붙여 두고 싶었다. 그러면 언제든 해 질 녘에 살금살금 지하로 내려와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일렬로 늘어선 민들레 와인이 엷게 덮인 먼지를 뚫고 아침에 피는 꽃 특유의 부드러운 빛으로 6월의 햇살을 빛내며 있을 것이다. 겨울날 민들레 와인 속을 자세히 보라. 풀잎 위에 눈은 녹고, 나무에는 다시 새가 찾아오고, 나뭇잎이 돋아나고, 바람결에 수많은 나비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들레 와인을 통해 회색 하늘이 파랗게 보일 것이다.
여름을 유리잔, 물론 아주 작은 유리잔에 따른 후, 아이들에게는 입만 축일 정도로 아주 조금만 줘 보라. 입에 유리잔을 가져다 대고 여름을 기울인 순간 혈관 속에서 계절이 바뀌리라.
시간의 흐름과 죽음은 필연적이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tempus fugit과 memento mori를 저변에 두고 이야기를 푼다. 하지만 과거에 집착하거나 쓸쓸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 기억들을 민들레 와인에 담아두고 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면 의연하게 이 모든 사건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스토익한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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