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추리·공포 단편선 1: 추리 소설
Fig.1 에드거 앨런 포 전집, 시공사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 및 공포 단편선 1권 1회독을 끝낸 기념으로, 간략하게 리뷰를 적어 보고자 한다.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몇 가지 공통적인 장르? 키워드? 로 나누어서 정리해 봤다.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 및 공포 단편에서 키워드를 추려 보자면, 맹인모상盲人摸象식 사건 서술, 추리 유도, 과학적 요소들, 고딕 호러, 자기 파괴적 행동, 그리고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광기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점들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장점이자,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생각한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위에 나열한 항목들 중에서, 맹인모상식 사건 서술과 추리 유도에 관한 생각에 대해 서술해 보기로 한다.
Fig.2 맹인과 코끼리의 일화와 같이, 에드거 앨런 포는 한 사건에 대해 다양한 시선에서 서술하여 독자의 흥미와 추리 의욕을 이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하나의 사건에 다양한 시선을 제시해 독자가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보는, 고전적인 추리 소설로서의 매력이 있다. 마치 저마다의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며 서로 다른 해석을 보이는 것처럼,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서는 같은 사건을 보고 여러 인물이 각기 다른 해석과 반응을 제공한다. 이런 충분한 단서로 독자는 중간에 책을 잠시 덮거나, 읽으면서 고민하는 등 스스로 추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 특징이 가장 강하게 보이는 단편은 모르그 가의 살인과 마리 로제 수수께끼가 있다. 모르그 가의 살인은 저택에서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당사자의 주변인들, 경찰, 부검의 등의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독자에게 보이고, 탐정이 사건의 전모를 풀어나가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마리 로제 수수께끼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을 배경으로, 다양한 언론사가 사건을 제각각 다른 시선으로 서술하고, 그 탐정이 사건의 전모를 추리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도 여러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서로 느끼는 점이 다른 것 처럼, 포의 작품에서 여러 증인과 언론사는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어떤 증인은 인물의 평소의 행실을 증언하고, 어떤 증인은 사건이 발생한 시간의 일을 증언한다. 어떤 언론은 사건에 대해 추리한 의견을 말하고, 어떤 언론은 그와 상반된 추리를 말한다. 작가는 이렇게 독자에게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고, 독자는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볼 수 있다.
Fig.3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 소설의 장점 중 하나는, 독자가 추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쉽다는 것이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탐정 또는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진상을 설명해 주려고 시작하려 할 때를 명확히 서술해, 해답을 알기 직전에 독자가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황금 벌레’ 에서 윌리엄 르그랑이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길쭉한 상자’ 에서 선장이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등으로 잘 보여진다. 마치 곧 해답을 알려주겠다는 분위기의 서술을 통해 독자는 잠시 독서를 멈추고, 지금까지 주어진 사건의 근거를 되짚어 보며 추리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Fig.4 It’s a trap!
하지만 게임이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듯이, 작가는 사건에 대해 많고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독자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함정에 빠트리는 서술 트릭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신선함을 안겨준다. 대표적으로 모르그 가의 살인과 황금 벌레가 그러한데, 전자의 경우 주인공(서술자)이 먼저 추리를 시도하면서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용의자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한정지었으며, 후자의 경우 윌리엄 르그랑에 대한 서술을 주인공(서술자)의 시선으로 한정지어, 그의 행동의 동기를 주인공의 시선으로 한정지어 독자의 생각을 자연스레 한 방향으로 유도하였다.
Fig.5 서술 트릭과 추리 포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추리를 시도해 보고 그에 따른 즐거움을 얻으려면 작가는 독자의 추리 의욕을 꺾지 말아야만 하고, 에드거 앨런 포는 그런 점에서 독자가 정답을 맞출 수 있을 듯 한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고 있다. 마치 녹스의 10계처럼, 독자가 추리를 해 볼 수 있도록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좁혀 놓고, 적절한 단서를 주면서 독자의 추리 의욕을 꺾지 않는다. 독자가 보지 못한 단서를 갑자기 꺼내며 추리를 진행하면 그 누가 의욕이 꺾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필자는 추리/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아서 코난 도일 경과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와 비교해 볼 수 있겠다.
Fig.6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주홍색 연구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모르그 가의 살인에 대해 리뷰했던 포스트에서도 다루었듯이, 독자에게 단서를 많이 제공해주지 않거나, 셜록 홈즈의 추리 과정에서 독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단서를 꺼내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이런 서술 방식에서 추리를 포기하고, 셜록 홈즈의 행보에 대해 집중해 모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이는 ‘주홍색 연구’의 왓슨과 셜록의 첫 대면 장면, 그리고 ‘바스커빌 가문의 개’의 편지 해석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전자에서는 셜록의 추리를 선행한 다음에 왓슨의 모습에 대한 묘사를 하며, 후자에서도 편지에 대한 추리를 선행하고 편지의 형태에 대한 서술을 한다. 이러한 경향은 독자로 하여금 추리를 멈추게 만들고, 수동적으로 셜록의 추리를 기다리며 모험을 감상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Fig.7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경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같이, 서술 트릭과 고정 관념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결말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역으로 말하면 독자는 사건의 진상에 대해 추리할 의욕을 잃게 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에서는 그 시체가 다른 시체와 구분될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으며,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의 경우 그 결말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 사건의 영역에 속하지 않아 추리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물론 아서 코난 도일 경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가 실패한 추리 소설가라는 것은 아니며, 포의 소설이 모두 추리가 가능한 소설은 아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네가 범인이다’의 경우 사용된 트릭은 그 단서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고, ‘도둑맞은 편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서술은 셜록이라는 주인공의 모험 활극을 돋보이게 만들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명성을 만들었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경우 서술 트릭과 충격적인 반전으로 최고의 추리 소설가의 명성을 가졌다. 또한, 필자가 기껏해봐야 두-세편의 작품만을 읽었기 때문에, 두 작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거 앨런 포의 다양한 작품에서 분명한 힌트를 주고, 천천히 단서를 주면서 독자의 추리 참여를 독려하는 경향이 있어서, 등장인물이 추리를 하는 추리소설 보다는, 독자가 직접 추리해볼 수 있는 추리소설의 매력이 있다. 앞서 서술한 ‘모르그 가의 살인’, ‘마리 로제 수수께끼’는 물론, ‘길쭉한 상자’ 에서는 코닐리어스 와이엇의 수상한 행동, 아내와 동생들의 행동거지의 불일치 등에서 독자는 충분히 사건의 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 있으며, 주어진 정보 속에서 추리를 해 볼 수 있으며, 진상을 알게 된 후 주어진 정보를 다시 보면 충분히 추리 가능할 정도로 주어진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하면,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한 사건을 다루는 다양한 서술이 주어지며 주어진 그 근거들로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사건의 진상을 통해 독자는 그 진상을 추리해 볼 의욕을 가지게 되고, 추리에 성공할 경우 성취감을, 그렇지 않았을 경우 신선한 충격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참고문헌
모르그 가의 살인(에드거 앨런 포 전집: 추리.공포 단편선 1). (2018). 시공사.
주홍색 연구. (2009). 펭귄클래식코리아.
바스커빌 가문의 개. (2010). 펭귄클래식코리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02). 황금가지.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2002).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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