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열두 방향 감상: 단편문학의 관점의 한계에 관해
Fig.1 바람의 열두 방향, 시공사
오래 전 생일선물로 받았던 책을 먼지를 털고 꺼내드니 반년만에 읽는 문학이었다. 최근 비문학 위주로 읽어서 그런지, 읽고 나서 드는 생각도 단편문학이라는 형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바람의 열두 방향”은 문학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지만, 몇몇 단편은 주제에 대한 시각이 다소 일방적이어서, 저자의 관점으로 독자를 유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람의 열두 방향”은 1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출간 순으로 단편을 나열했기 때문에 관통하는 주제는 없으나,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리뷰에서는 그 공통점 몇 가지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된 작품들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묘사와 줄거리를 가지면서, 동시에 철학적·정치적인 주제를 담았다. 수록작 중 “샘레이의 목걸이”, “어둠상자”등은 배경 묘사나 줄거리가 예측불가하고 몽환적인 면이 있어 동화를 연상케 했으며, ‘74년 휴고상 최우수 단편 수상으로 빛나며, 공리주의의 비판 예시로 잘 알려져 있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생태주의적 생각을 담은 “길의 방향”은 철학적·정치적인 주제를 담아 관련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를 주었다.
문학은 어려운 철학적·정치적 요소를 쉽게 풀어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학을 통해 어떤 철학적·정치적 주제에 관해 여러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영화 “매트릭스”가 대중에게 형이상학적 질문을 흥미로운 스토리로 전달한 것처럼, “바람의 열두 방향”에서는 앞서 언급한 작품 외에도 존재론적 질문을 다룬 “머리로의 여행”, 인식론적 질문을 던진 “시야” 등이 있었다.
하지만 단편소설의 분량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주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장편소설에서는 분량 상 여러 관점을 제시할 수 있고, 덕분에 주제에 관한 상반된 관점을 고려하며 숙고할 수 있었다. “화씨 451”에서 비티 서장이 주인공과 서로 다른 관점으로 대립한 장면의 예나, “멋진 신세계”에서의 총통과의 대화 장면의 예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린 몇몇 단편에서는 다소 일방적인 관점만을 보여준 점이 아쉬웠다.
예를 들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해당 작품의 줄거리는, 오멜라스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한참 묘사하다가 그 모든 아름다운 풍경은 한 사람이 고통받는 대가로 이루어진다는 줄거리이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리주의의 반례로 인용한 단편으로, 극단적인 효용의 불균등을 예시로 들어 도덕 원리를 효용의 합으로 설명하려 한 이론을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예시도 공리주의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극단적 예시를 들어 반박한 것이지, 그 이후의 ‘효용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생략하여 다소 아쉬울 따름이었다.
때문에 해당 단편들을 통해 철학적·정치적 주제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한 장점이지만, 일방적인 관점만을 제시해 독자를 저자의 관점으로 유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문학이 독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넛지 이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 넛지 이론에 관해 조사해보았다. 대중서 “넛지”로 잘 알려진 자유지상주의적 온정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에 관해, L. Bovens는 넛지가 작동하는 의사결정은 덜 자율적인 측면이 있다고 한 점과 넛지로 인해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잃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 점을 고려하면, 이 단편선을 읽고 관련 주제에 관한 지식을 찾고 숙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1,2]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주관을 완전히 배제한 문학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에게 숙고의 여지를 주느냐, 혹은 단선적 해석만을 강요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면, “바람의 열두 방향”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묘사와 줄거리, 다양한 단편에서 다루는 철학적·정치적 주제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점에서 매력적인 단편선이라고 할 수 있으나, 몇몇 단편은 주제를 다루는 관점의 폭이 다소 좁았고, 때문에 독자가 능동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제한한다는 아쉬움이 남는 단편선이었다.
참고문헌
[1] R. H. Thaler and C. R. Sunstein, “Libertarian Paternalism,”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93, no. 2, pp. 175-179, 2003.
[2] L. Bovens, “The Ethics of Nudge,” in Preference Change: Approaches from Philosophy, Economics and Psychology, T. Grüne-Yanoff and S. O. Hansson, Eds. Dordrecht: Springer Netherlands, 2009, pp. 20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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